그루브는 도시의 심박수가 되어
록은 죽었다고 다들 말하기는 합니다. 록의 저항 정신이 죽은 것인지, 음악성이 죽은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록을 좋아라 하는 사람들이 줄어든 것일지도 모르겠지요. 혹은 뭐만 하면 '예술의 종말' 타령 하는 사람들이 겁을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만 해도 록을 좋아하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아,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한때 좋아했었던 장르기도 하구요. 오아시스를 필두로 한 브릿팝이니, 너바나와 그런지니 뭐니를 이미 두 밴드의 전성기를 이삼십 년쯤 지난 때, 그것도 한국에서 이야기하기도 했던 걸요.
제가 좋아했던 록은 이미 '얼터너티브화'된 락이긴 합니다. 그 이전에는 '하드 록'이나 '헤비 메탈'이라고 레드 제플린이니 퀸이니 하는 밴드들이 커다란 곳에서 엄청난 솔로 연주를 선보이는 음악들을 했었죠. 저는 그런 걸 현장에서 본 적 없습니다. 부산 록 페스티벌도 한 두어 번 정도 간 게 다인 걸요. 요즘 사람들이 듣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아이돌 음악이나 전자 음악은 애니메이션 서브 컬처에 잘 파고들었습니다. 로우-파이 힙합 플레이리스트는 도시인의 수면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음성 합성 엔진과 짧고 강렬한 선율로 숏폼에 잘 파고 든 음악들이 히트하기도 합니다. 이를 두고 '옛날의 음악'을 좋아하던 사람들은 '사람들이 그런 거나 듣다니 암울한 시대다' 하고 불평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정주행하던 시대가 갔다면서요.
저는 사실 조금 끼인 느낌입니다. 앨범 정주행, 합니다. 그러나 스트리밍으로 무제한 제공받은 탓인지, 앨범 정주행을 하면서도 앨범에 대한 경외감보다는 '앨범 시간'을 많이 봅니다. 앨범 길이가 45분 안팎이면 산책 한 바퀴 돌면서 듣기 최적입니다. EP가 대세가 된 지금은 훨씬 더 짧은 음반들이 많더라고요. 30분도 안 되는 음반이 많습니다. 더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 듣기 좋겠지요. 이렇게 걸을 때 귀에 거는 이어폰이나 헤드폰이 그렇게까지 좋을 수는 없습니다. 좋은 건 집에 모셔놔야죠. 온이어 헤드폰을 끼고 걷거나, 카페에 앉으면 귀에 잡음이 섞여 듭니다. 보통은 그런 잡음이 싫어서 '노이즈 캔슬링'을 쓰시는 분도 있지만, 저는 그런 걸 쓸 형편이 되지 않아서 그냥 다닙니다.
그러면 귀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건 뭘까요, 드럼입니다. 미묘한 박자감을 안겨주는, 드럼 말입니다. 드럼은 도시의 소음으로부터 사람을 지켜주는 부적이자, 도시를 즐기게 해주는 박자감입니다. 선율은 단순하더라도 괜찮습니다. 이미 도시는 고작 음악으로는 감출 수 없이 시끄러우니까요. 단순했던 도시의 소음은, 느리고 침착한 드럼 루프를 만나 힙합의 랩과 같은 선율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은 과거의 90년대 얼터너티브 록보다는 좀 더 박자감 있는 음악들을 많이 듣습니다. 재즈 붐뱁이나 로 파이 힙합이 좋습니다. R&B와 소울은 힙합의 사촌이라, 그 느린 박자감이 좋습니다. 록을 듣더라도, 블루스 성향이 짙은 록은 록이라기보다는 로큰롤 같아서 강렬한 그루브를 선사합니다. 아니면 챔버 팝 같은 실내 현악을 사용하는 것도 좋아요. 현대적인 그루브와 만나서 도시의 소음으로부터 피할 공간을 만들어주는 느낌입니다.
전자음악을 듣지 않는 건 아닙니다. 90년대에 등장했던 트립 합이나 정글, 브레이크비트는 현대 힙합의 대선배지요. 다만 신스웨이브는 밤이 아니면 못 듣겠습니다. 이 동네는 네온사인이 많이 없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