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살인> 지금 읽기는 진짜 촌스럽긴 한데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드레스덴 파일즈> 시리즈가 한국어로 발간된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드레스덴 파일즈> 시리즈가 한국어로 발간된 적이 있단 말입니다. <드레스덴 파일즈> 시리즈가요.
라고 해도, 대다수는 정말 '그게 뭔데 오타쿠야'라고 하실 겁니다. 영미권에서는 정말 유명한 '하드보일드 마법사 탐정' 시리즈입니다만, 국내에서는 생소하기 그지없습니다. 미국 드라마판이라도 좀 인기를 얻었다면 말이 달랐을텐데, Sci-Fi 채널에서 시즌 1을 제작하기는 했습니다만 성적 부진으로 시즌 2는 제작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드레스덴 파일즈> 시리즈는 2020년에 17번째 시리즈가 나오고 18권째를 바라보고 있는 장기 연재 시리즈입니다. 한 권에 하나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영미 특유의 펄프 픽션 감성을 좋아해서, 저도 연재 방식만큼은 꼭 이런 스타일로 천천히 '권수 단위'로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는 합니다.
그래서, 이 <드레스덴 파일즈> 시리즈가 한국에 출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것도 2권까지나요. 2007년 두드림이라는 출판사에서 발매되었습니다. 첫 권의 제목은 <마법살인> (원제 <Storm Front>), 그리고 그 다음 편은 <늑대인간>(원제 <Fool Moon>)입니다. 왜 두 권 나오고 절판되었는지 아실 만한 번역입니다.
하지만 <마법살인>의 내용물을 보신다면 더 놀라우실 겁니다. 소설이 굉장히 유치하고, 낡았고, 너무 마초적이기 때문입니다. 작중에 나오는 마법은 동화에 가깝고, 배경이 되는 시카고의 갱단은 피상적인 느낌을 줍니다.
혹시 느와르 작가 중 '미키 스필레인'이라는 작가를 아십니까? 미키 스필레인의 <마이크 해머 시리즈>에 동심을 더한 느낌입니다. 등장하는 모든 여성 캐릭터는 나약한 게 주인공 해리 드레스덴에 홀려 있는 느낌인데다, 마법은 유치하며, 악당도 진부합니다. 당시 기준으로는 새로웠겠다 싶은데, 지금 기준으로는 이미 읽을 만한 책이 차고 넘칩니다.
사실 저는 읽다가 너무 마초적인 느낌이 강해 반발심이 들어서 읽기를 그만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끝까지 읽어보았습니다. 뇌를 빼고 읽어지니까 정말로 독서가 되더라구요.
마초적인 부분은 굉장히 반발감이 들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이 굉장한 페이지 터너(Page Turner)라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주인공 해리 드레스덴이 늘어놓는 독백들은 유치하고 후지지만, 그럼에도 페이지를 계속 넘기게 되는 이유는 작품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이 그를 좀처럼 놓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느와르와 판타지의 결합 답게, 작품은 시작부터 굉장히 빠르게 핵심적인 사건을 보여주며 치고 들어옵니다. 일찍부터 붙은 불에 작가는 매 장이 끝날 때마다 장작을 넣고, 그 불이 식기가 무섭게 장작을 넣고 ⋯ ⋯ . 마침내 캠프파이어로 화르르 불이 타오를 때까지 자꾸 장작을 집어넣습니다. 게다가 이 캠프파이어가 생각보다 구조가 탄탄합니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꽤 장관입니다.
지금은 구하기 어려운 책이기도 하고, '어반 판타지' 장르의 시금석을 확인해보고 싶은 게 아니라면야 <마법살인>을 굳이 권하지는 않겠습니다. 3권부터 본격적으로 재미있어진다고는 하는데, 하필 한국에서는 2권에서 정식 발매가 끊어졌네요. 이해는 가지만 아쉬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