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콜드> 슈퍼내추럴, 로맨스, 그리고 소수자들

절판된 책들을 둘러보다 보면 '이거 현지에선 좀 잘 나가는 어반 판타지 소설인데?' 싶은 책들이 많습니다. <마법살인>이라는 쌈마이한 제목으로 출간되었던 <드레스덴 파일즈> 시리즈가 있구요, <런던의 강들> 시리즈도 2권까지 출간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뱀파이어 헌터물인 <애니타 블레이크> 시리즈도 3권까지나 출간된 적이 있구요.

퍼트리샤 브릭스의 <문 콜드>도 그런 '현지에서 잘 나가는 어반 판타지 소설'입니다. <머시 톰슨> 시리즈의 첫 권으로, 현지에서 이 시리즈는 벌써 15권을 앞두고 있네요. 지금도 '어반 판타지 대표작' 하고 영미권에 검색하면 앞서 말한 <드레스덴 파일즈>와 <런던의 강들>과 같이 자주 얼굴을 비추는 시리즈입니다.

솔직히 말해 직전에 읽었던 <마법살인>, 그러니까 <드레스덴 파일즈>가 페이지터너로서의 놀라운 흡입력과 동시에 상당한 구림을 보여준 탓에 <문 콜드>도 그렇게 기대는 안 하고 읽었습니다. 상당히 오래된 작품이고, 국내에서 3권까지만 나오고 절판된 데는 다 이유가 있을테니까요.

 

다행히, <문 콜드>에서는 수확이 좀 있는 편이었습니다. <마법살인>도 재미는 있었지만, 그게 단순 '페이지 터너'로서 자극적인 소금맛이라기보다는 <문 콜드>는 그래도 생각의 여지를 주는 작품이었다는 느낌일까요.

<문 콜드>는 '머시 톰슨'이라는 자동차 정비업을 하는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평범한 여성은 아니고 '워커'라는 일종의 '코요테로 변신하는 능력'을 지닌 셰이프시프터고 (작품 내 여러 차례 강조되지만, '늑대인간'은 아닙니다.) 인근에는 늑대인간 우두머리 '아담'과 그의 무리들이 살고 있으며 다른 초자연적인 존재(요정, 마녀, 그리고 흡혈귀)들이 그녀에게 자동차 정비를 요청하곤 합니다.

이 머시 톰슨의 이웃인 '아담'이 습격당하며 그의 의붓딸인 '제시'가 납치당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로 인해 머시 톰슨은 그녀를 길러준 부모 격인 또다른 늑대인간 우두머리 '브랜'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늑대인간 무리를 둘러싼 음모에 휘말리게 되죠.

 

작품을 읽는 내내 이 '초자연적 존재'들은 '소수자성'과 동치됩니다. 이를테면 '과학의 발전으로 스스로를 숨길 수 없게 된 요정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인간들에게 드러냈고, 그 대가를 치렀다'는 서술이 등장합니다. 그 외에도 늑대인간이면서 동성애자인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주인공인 '머시 톰슨' 자체도 매우 과시적인 남성성을 드러내는 늑대인간 무리에 섞이지 못하는 모습을 드러냅니다. (게다가, 애초에 '늑대인간'이 아닌 '워커'니까요.)

그런 소수자성은 일반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들고, 따라서 이를 두고 '소수자 사회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정치극을 다루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후반에 진상이 밝혀질 때의 이야기이고, 중반부는 종족간 로맨스입니다. 퍼트리샤 브릭스가 구상한 '늑대인간'들의 생태는 매우 흥미로운데다가, 여기에 여성 화자로서 '머시 톰슨'이 어떻게 대응하며 스스로를 지키고 있는지 생각하면 굉장히 젠더적으로 진보적인 소설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다만 이 점은 아쉽습니다. 어디까지나 '소수자 내부'에 관한 소설이라는 것. '일반인'들이 늑대인간이나, 요정, 혹은 뱀파이어같은 초자연적 존재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예 공란으로 비워져 있는 느낌입니다. 꽤 뼈아픈 것이, 작품 자체가 '소수자로서의' 늑대인간이 어떻게 인간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것인가를 다루려 노력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 아쉽습니다.

그렇다고 그 <마법살인>조차 2권을 구해뒀는데 이 작품을 계속 읽지 말라는 법은 없지요. 조만간 2권을 구해야겠다는 생각도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