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 삶에서 터져 나오는 합창
속았다는 느낌부터 받았습니다. 저는 이 책을 에세이집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Horses>라는 음반으로 유명한 패티 스미스는 에세이집을 여럿 냈는데, 개인적으로 <달에서의 하룻밤>을 읽고 그 문장에 꽤 감명을 받았기 때문에 계기가 되어서 패티 스미스 외에도 다른 예술가들의 에세이를 여럿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몰입>은 구조가 특이합니다. 가운데 쓰인 단편 <헌신>을 중심으로 서문에 해당하는 <마음이 작용하는 방식>이, 뒤에는 작가 후기 격인 <꿈은 꿈이 아니다>가 실려 있습니다. 실제로는 에세이에 햄버거처럼 단편을 끼워파는 형식인데, 상술도 나쁘고 악독해야 상술이지 이렇게 좋아서야 상술이라고 욕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에세이에까지 감상문을 쓰진 않습니다. 왜냐면 저에게 에세이는 정말 가볍게 쉬려고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단편 '한 작품'에 리뷰를 남기는 것도 어려워합니다. 한 작품에서 많은 걸 읽어내 길게 분석할 능력도 저는 그렇게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패티 스미스의 <몰입>, 정확하게는 단편 <헌신>에는 읽은 직후인 지금 적어두지 않으면 못 털고 지나가서 내일 하루를 망치게 될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래서 짧게나마 감상을 적으려고 합니다.
<헌신>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헌신>은 <키다리 아저씨>의 반대 느낌입니다. 이모 밑에서 자란 유지니아는 스케이트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고, 마리아의 교육에 따라 챔피언에 도전할 준비를 하는 등 채비를 마치지만, 결국 알렉산더라는 남자와 눈이 맞아 달아납니다.
하지만 알렉산더가 유지니아를 데려간 곳은 필라델피아였고, 온화한 기후의 필라델피아에서 스케이트를 탈 수 없었던 유지니아는 알렉산더를 죽이고 집으로 돌아와 얼어붙은 연못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합니다. 살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곧 금이 가 깨지기 직전의 연못 위에서 말입니다.
줄거리만 말해서는 이해 못할 글입니다. 이야기는 너무나도 단순합니다. 작품 자체가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보기에도 이야기의 단순성 때문에 오히려 과한 해석이 들어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지경입니다.
패티 스미스는 <헌신>을 쓰면서 어떻게 작가가 창작이라는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행위에 몰두할 수 있는지, 왜 혼자 고독 속에서 기쁨을 느끼려 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고 합니다. '어째서 글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걸까?'
솔직히 말해, 그 점을 파헤치는 것은 작가의 몫이지만 그 점을 독자에게 납득시키는 것은 여느 작가라 하더라도 어려운 지점입니다. <헌신>에서 패티 스미스는 그 점을 설명하는 데에는 다소 난항을 겪습니다. 물론 <헌신> 자체가 나쁜 작품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유지니아가 가진 스케이트에 대한 헌신이나 경건함은 실제로 창작에 몸을 담근 사람이 아니라면 납득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습니다.
하지만 <헌신>이 아니라 <몰입>은 다릅니다. <몰입>은 창작자가 창작을 하는 이유를 파헤쳐 시적인 에세이로 쓴 것에 가깝습니다. <헌신>의 창작은 그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한 실험 과정이었을뿐입니다. 그러면 패티 스미스가 발견한 결론은 뭘까요? 왜 글을 쓰지 않고 못 배기는 것일까요?
패티 스미스는 서문과 마지막 문장을 같은 문장으로 끝냅니다. 꽤 멋있는 수미상관입니다. 우리는 “왜 글을 쓰는가? 합창이 터져 나온다. 그저 살기만 할 수가 없어서.”